<우리땅 순례> 전주 이야기 (3) - 풍남문
"여행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습니다. 떠남과 만남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의 성(城) 밖으로 걸어나오는 것이며 만난다는 것은 물론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여행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떠남과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자기의 집을 나와 새로운 곳, 새로운 대상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행과 똑같은 내용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 여행은 돌아옴(歸)입니다. 나 자신으로 돌아옴이며 타인에 대한 겸손한 이해입니다. 정직한 귀향이며 겸손한 만남입니다. 이 정직한 귀향과 겸손한 이해가 없는 한 서로 다른 세계가 평화롭고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픈 과거로부터 새로운 세기를 향하여 떠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신영복, 더불어 숲 중에서-
장 현실 선생님께
별래 무량하셨는지요.
어느 결에 벌써 세밑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름뿐인 천주교 신자이긴 하지만 12월은 크리스마스가 있어 좋은 시절입니다. 크리스마스에 들려오는 캐롤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들뜨게 하는 모양입니다. 저도 캐롤을 듣노라면 어릴 적 성당에 나가 자그마한 손 가득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오던 행복한 기억에 젖어들곤 합니다.
이런 흐뭇한 생각으로 전동 성당을 지나치다 전주 풍남문을 보았습니다.
전통적 의미의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1백여 년 전의 혁명의 함성을 들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지금에 와서 혁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주제 넘는 일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주제넘음과 부질없음을 무릅쓰고 혁명에 대해, 혁명의 염원에 대해 하잘 것 없는 생각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의 문을 열고 귀를 귀울여 보았습니다. 1894년 이곳에서 있었던 동학 혁명의 함성을, 죽창과 재래식 화승총소리를 그리고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희망의 속삭임과 절망의 울부짖음을.
조선 시대의 성이 대개 그렇듯이 전주성에도 동서남북 네 곳에 성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주성은 반경이 500미터 정도였다고 하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큰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서울의 사대문 안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작은 것이고 사대문 안의 넓이와 비교해보아도 전주성이 그렇게 작은 편은 아니었겠다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서울 숭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전주의 풍남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풍남문은 영조 때 건립한 것으로 보물 30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영조때 중건하기 전에는 지금처럼 2층이 아니라 3층이었다고 전해지고 고려 말 공양왕때 지었다고 하는군요. 풍남문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은 영조 때 중건하면서인데 한고조의 고향이었던 풍패(풍주와 패주)를 따서 조선왕조의 풍패이므로 남문은 풍남문(豊南門), 서문은 패서문(沛西門)이라고 했답니다.
이 풍남문이 전주의 성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나머지 동,서,북의 문은 지명으로만 전합니다. 동문사거리, 서문교회, 북문목욕탕 등.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기 위해 들어왔던 문은 서문이었습니다. 서문은 용머리 고개 그리고 지금도 전주의 중심도로인 동서관통로(지금은 충경로라고 한다죠? 너무 유교적이기도 하고 전주의 향토사단이름이 충경사단인 점을 감안한다면 너무 관(官) 냄새가 풍기는 이름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긴 합니다만...)와 이어지는 문이었다고 합니다. 제 친구는 "이 거리를 녹두거리라고 하면 어떨까?"하더군요. 저도 참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용머리고개는 김제, 부안, 고창 정읍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고개였다고 하는 군요. 동학군이 고창 고부 쪽에서 진격해 왔으니 서문으로 들어온 것은 특별한 것은 아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장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전주하면 전주교도소를 떠올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옛날 얘기를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처음에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인용한 것도 그분이 전주교도소에 머물러 계시기도 하셨고 문익환 목사님도 전주에 계셨지요. 전주교도소는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아 전주를 너무 좋은 곳인 양 얘기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가 계속 되다 보면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만 줄일까 합니다. 동학군에 대한 얘기를 다하지 못하고 중간에 마치는 것 같아 죄송하구요. 성탄도 며칠 남지 않았군요. 즐거운 성탄 보내셨으면 합니다.
원문은 2000년 12월 20일에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27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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